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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회 (한국문학전집 520)

'공진회'는 1915년에 안국선이 발표한 단편 소설집으로, '기생', '인력거꾼','시골노인이야기', '탐정순사', '외국인의 화(話)' 등 다섯 편이었으나, 당시 경무부의 검열에서 뒤의 두편이 삭제되고 앞의 세 편만 실렸다. 여기서는 '기생'과 '인력거꾼'의 일부만 소개한다. 이 작품은 작가 안국선이 남긴 다른 작품 '금수회의록'이 사회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과는 달리, 친일적이고 체제순응적이어서 매우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공진회'는 소설 속에 다시 사건이 이어지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서문'이나 '이 책 보는 사람에게 주는 글' 같은 것을 앞에 제시하여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과, 세 편의 소설을 연작 형식으로 쓴 것이 특색이다. 또한 일상어에 의한 표현이 주가 된 점에서 개화기..
'공진회'는 1915년에 안국선이 발표한 단편 소설집으로, '기생', '인력거꾼','시골노인이야기', '탐정순사', '외국인의 화(話)' 등 다섯 편이었으나, 당시 경무부의 검열에서 뒤의 두편이 삭제되고 앞의 세 편만 실렸다. 여기서는 '기생'과 '인력거꾼'의 일부만 소개한다. 이 작품은 작가 안국선이 남긴 다른 작품 '금수회의록'이 사회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과는 달리, 친일적이고 체제순응적이어서 매우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공진회'는 소설 속에 다시 사건이 이어지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서문'이나 '이 책 보는 사람에게 주는 글' 같은 것을 앞에 제시하여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과, 세 편의 소설을 연작 형식으로 쓴 것이 특색이다. 또한 일상어에 의한 표현이 주가 된 점에서 개화기 소설의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878(고종 15)∼1926. 신소설가. 호는 천강(天江). 경기도 고삼(古三) 출생. 일본 유학을 한 개화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1895년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에서 정치학을 수학하였다. 귀국 후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국민계몽운동에 헌신하다가 1898년 독립협회 해산과 함께 체포, 투옥되어 참형의 선고를 받았다가 진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907년부터 강단에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한 그는 교재로 ≪외교통의 外交通義≫·≪정치원론 政治原論≫ 등을 저술하였으며, ≪연설법방 演說法方≫은 당시 유행하던 사회계몽 수단인 연설 토론의 교본으로 저술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야뢰 夜雷≫·≪대한협회보 大韓協會報≫·≪기호흥학회월보 畿湖興學會月報≫ 등에 정치·경제·시사 등의 시사적인 논설도 발표하였으며, 대한협회의 평의원도 역임하였다.

그가 관계에 몸을 담게 된 것은 1908년 탁지부 ( 度支部 ) 서기관에 임명되면서부터이다. 1911년부터 약 2년간 청도 군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형무소에 수감 중 기독교에 귀의하였고 계명구락부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금광·개간·미두·주권 등에 손을 대었으나 실패하고 일시 낙향하여 생활하였으나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다시 상경하였다.

그의 소설로는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공진회 共進會〉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필사본으로 〈발섭기 跋涉記〉 상·하 2권과 〈됴염전〉이 있다 하나 전하여지지 않고 있다. 그의 소설과 저술물의 기저를 이루는 사상으로 유교적 윤리와 기독교적 윤리사상을 들 수 있다.

이는 당대의 혼란한 국가와 사회를 바로잡고자 한 그의 현실관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정신개조를 통한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이루려는 그의 태도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 우리의 전통적인 제도와 사상, 즉 동도(東道)는 지키면서 근대 서양의 과학기술, 즉 서기(西器)는 받아들이자는 이론.)의 개화파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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