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키즘의 예술관적 입장에서 ─
「조문(朝文)」편자로부터 아나키즘의 예술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기는 고향에 있을 때부터 수삼 차였다. 그러나 발목을 붙들어 매고 싸도는 모든 사정은 이에 응할 자유와 여유를 주지 못하여 부득이 호의에 답하지 못하였더니 이제 경성각(京城閣)으로 씨를 방문하매 씨의 첫 주문이 예의 이 제목이다. 그의 친절한 호의에 부득이 거절치는 못하였으나 앞으로 체절(締切)일자가 불과 수일이니 그날 그날의 시간이 신통하지 못한 생활전(生活戰)에 거의 다 허비하는 처지로서 게다가 아무런 예비도 갖지 못하였음에랴. 조그마한 틈을 이용하여 붓을 들기기는 들었으나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추태를 면하기 어렵겠음으로 차라리 초지(初志)를 고쳐 여기에서는 맑스주의의 예술관을 원칙적으로 검토하면서 우리의 문예상의 입장을 약술하여 보려한다.
우리는 사물을 관찰함에 있어서 현상을 현상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긍정하면서 그 위에서 인식의 방법을 취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비(非)의 부정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 긍정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다. 세상에서는 흔히 이 간단하고도 명료한 사실을 망각하고서 덮어놓고 대냥거름이라는 셈으로 배타일관의 외고집들만을 세움으로 잡다무용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오늘 날 조선의 문단씨름이 그 하나이다.
1926년 평론 「무산계급의 예술」과 시조작품 및 기타를 『시대일보』·『조선지광』·『동아일보』·『중외일보』 등에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조직에 가담하여 부르주와 예술과 형이상학을 비판했으나, 곧바로 전환하여 김화산(金華山) 등이 주도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문학의 편에 서서 카프파와 논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의 시작품은 시조와 단곡(短曲 : 짧은 악곡)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27년 영창서관에서 간행한 단독 사화집(詞華集)인 『흑방(黑房)의 선물』에는 「님 타신 망아지」 이하 50수의 시조작품과 「영원의 비애」 이하 46편의 단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조라는 형식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고 일제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의지를 뜨겁게 나타내면서 응축된 표현의 묘미를 긴장되게 갖추고 있었다.”고 한 김용직(金容稷)의 말과 같이 권구현이 시도한 시조와 단곡 형식은 매우 의도적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아나키즘 사상이 언제나 우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내용과 기법을 일체화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폐물(廢物)」(별건곤, 1927.2)과 「인육시장점묘(人肉市場點描)」(조선일보, 1933.9.28∼10.10.) 등 2편의 단편소설과 많은 평론과 수필을 지상에 발표하였다.
그는 서화에도 재능을 보이고 있는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여러 번 입선하였고, 개인전도 몇 차례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미술평론에도 일가견을 이루어 「선사시대의 회화사」(『동광』, 1927.3∼5.)를 위시하여 몇 편의 미술평론과 단평을 발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