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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한국문학전집 469)

내가 그림을 시작한지 그럭저럭 십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매 없는 살림을 억지로 쥐어짜 그린 그림이라 그다지 적지는 않았다. 그래 수 삼년 전부터 나의 미술생활을 이해하는 친한 친구간에 몇번이나 나를 위하여 나의 개인전람회를 암암리에 계획하는 것을 눈치 챌 적마다 나는 한사코 그들을 말렸다. 세상에 내놓기는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 언제든 유일의 구실이었다. 허면 그들은 ‘어느 때가 와야 익숙해지느냐’고 반문한다. ‘이만하면 하는 자신이 있기 전에는’하고 나는 빙그레 웃는다. 그러면 그들도 하는 수없이 계획했던 것을 중지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나면 반드시 선전에 출품하기를 권하였다. 나는 그것조차 즐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러 친구들이 나를 가리켜 괴벽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만나서나 또는 뒷공론을 하는 줄 ..
내가 그림을 시작한지 그럭저럭 십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매 없는 살림을 억지로 쥐어짜 그린 그림이라 그다지 적지는 않았다. 그래 수 삼년 전부터 나의 미술생활을 이해하는 친한 친구간에 몇번이나 나를 위하여 나의 개인전람회를 암암리에 계획하는 것을 눈치 챌 적마다 나는 한사코 그들을 말렸다.
세상에 내놓기는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 언제든 유일의 구실이었다. 허면 그들은 ‘어느 때가 와야 익숙해지느냐’고 반문한다.
‘이만하면 하는 자신이 있기 전에는’하고 나는 빙그레 웃는다. 그러면 그들도 하는 수없이 계획했던 것을 중지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나면 반드시 선전에 출품하기를 권하였다. 나는 그것조차 즐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러 친구들이 나를 가리켜 괴벽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만나서나 또는 뒷공론을 하는 줄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마는 사실 그들은 내 그림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해 그러는지는 몰라도 나 자신으로는 여러 사람 눈앞에 내놓을 시기가 아직 아니라고 굳은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소설가 겸 평론가, 영화제작자이다. 호는 효봉(曉峰)이며, 효봉산인(曉峰山人)이라는 필명도 사용했다.

한성부 출신으로 보인학교에서 수학했다. 이 학교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집결한 보인학회가 1908년에 설립한 애국계몽 계열의 사립 학교이다. 보인학교에 재학하면서 계몽운동에 뜻을 두게 되고, 임화와도 교유하였다.

10대 때부터 소설 습작을 시작하여, 1921년에 《조선일보》에 〈성탄의 추억〉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1922년에는 염군사에 가담하고 1924년에 서울청년회 소속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창립을 주도했다. 카프 중앙위원과 서기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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