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 전 일입니다. (어떤 자는 말하였다.)
나는 백두산 뒤 청석하라는 조그마한 촌에 살았습니다. 그때 우리 집은 뒤에 절벽이 있고 앞에 맑은 시내가 있는 사이에 외따로 있었습니다. 형제가 없는 나는 늘 우리 집에 있는 농군과 함께 김도 매고 소도 먹이면서 아주 재미있게 지내었습니다. 그리고 사이만 있으면 처가로 갔었습니다. 내가 가면 장모께서는 “사위, 사위” 하시면서 떡도 해 주고 엿도 달여 줍니다. 그리고 장인께서는 낮이면 밖으로 나가시고 밤이면 이웃에 가서 장기나 두시다가 잘 때나 돌아오십니다. 그런 까닭으로 집에서는 아버지의 책망이 두려워서 기를 못 펴던 나는 처가에만 가게 되면 뛰고 소리치고 바로 내 세상이 되지요. 그러므로 나는 처가에 가기를 늘 즐겨 하였습니다. 집에서도 처가에 간다면 책망이 없었습니다.
최서해(崔曙海: 1901-1932)
함북 성진 출생. 본명은 학송(鶴松). 성진 보통 학교 5학년 중퇴. 그 후 막노동과 날품팔이 등 하층민의 생활을 몸소 겪음. 1924년 <조선문단>에 <고국(故國)>의 추천으로 등단. <카프> 맹원으로 활동. <중외일보>, <매일신보> 기자 역임. 그는 초기 작품에서 빈궁한 하층민의 삶을 그려내는 계급적인 작가로 활동하였으나, 그 후 시대 의식과 역사 의식을 실감 있게 다루면서 현실성과 낭만성을 다양하게 수용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는 <토혈>,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 <탈출기>,<금붕어>, <그믐밤>, <홍염>, <수난>, <무명초>, <호외 시대>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