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황수건'이라는 사내가 엮어내는 이야기인데, 우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지닌 '황수건'이 각박한 세상사에 부딪혀 아픔을 겪는 모습이 중심을 이룬다. '황수건'이 여러 번 좌절을 겪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면서, '황수건'과 같은 순박하고 천진한 사람이 좌절하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1인칭 서술자의 연민이 주조를 이루기는 하나, 서술자는 주인공인 '황수건'의 불행을 부각시켜 서술하기보다는 '절제된 연민'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즉, 서술자는 주인공의 불행과 관련된 정보를 최소한으로 줄여 처리하고 다른 사건에 대한 서술로 넘어가거나,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독자가 주인공의 불행에 몰입되는 것을 막고 있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을 읽는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연민에 머물게 한다.
'나'는 문 안에서 성북동 시골로 이사 온 후에야 사람다운 삶의 체험을 하게 되어 더 큰 보람을 느낀다. 그것은 '못난 이'가 눈에 잘 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문 안에는 말하자면 '잘난 사람'들만 살기 때문에 '못난 사람'은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골은 '못난 사람'도 자신을 감추지 않고 사는 곳이다. '못난 사람'이 자기 나름의 서툴고 어수룩한 생각을 통제 없이 표현한다는 것은 시골에는 그러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북동에 작은 집을 사서 이사 온 '나'에게 "왜 이렇게 죄고만 집을 사구 와겝쇼. 아, 내가 알었더라면 이 아래 큰 개와집도 많은 걸입쇼."라고 첫 대면부터 황당하게 면박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못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런 인물에게 정(情)을 느끼고 있다. '나'가 '반편'에 해당하는 '황수건'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를 느끼고, 또 이야기의 뒷끝이 깨끗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늘 복잡하고 뒷끝이 깨끗하지 못했다는 것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작가가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두 인물의 관계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인물의 사람됨과 그러한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즉, 이 세계는 약삭빠르고 경쟁에서 이기는 '잘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기에 '황수건' 같이 신문 배달 자체만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 그래서 도중에 어느 집에서 지체되면 밤이 되어서까지 배달하는 사람은 도시적 경쟁에서 도태(淘汰)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을 통해서 '반편' 같은 존재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살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태준의 대표작, 예를 들어 <까마귀>, <밤길>, <복덕방> 등은 일상적인 사소한 것들에 패배당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호는 상허(常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서 공부했다. 귀국한 뒤로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기자로도 활동했다. 1933년 구인회 회원으로 가입했고, 1930년말에는 〈문장〉의 소설 추천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최태응·곽하신·임옥인 등을 배출했다. 8·15해방 후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임화·김남천 등과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월북했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국가학위수여위원회 문학분과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1947년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기행에 나섰고, 6·25전쟁 때는 북한의 종군작가로 참가했다. 1953년 남조선노동당 인물들과 함께 숙청될 뻔했으나 가까스로 제외되었고, 1955년 소련파가 숙청될 때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었다. 함경남도 노동신문사 교정원으로 일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1953년 숙청이 끝난 가을 자강도 산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1960년대 초에 병사했다는 증언도 있다.
1925년에 시골여인의 무절제한 성생활을 그린 〈오몽녀 五夢女〉(시대일보, 1925. 8. 13)로 등단한 뒤, 〈불우선생 不遇先生〉(삼천리, 1932. 4)·〈달밤〉(중앙, 1933. 11)·〈손거부 孫巨富〉(신동아, 1935. 11)·〈가마귀〉(조광, 1936. 1)· 〈복덕방〉(조광, 1937. 3) 등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현실과는 무관한 인물들을 그리고 있지만 대부분 토착적인 생활의 단면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는 특히 문학의 자율성과 언어의 정련(精練)을 강조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몇 번을 되풀이해 고쳤는데, 이런 점에서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사에서 소설의 기법적 완숙과 예술적 가치를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1948년 북한의 토지개혁 문제를 다룬 〈농토〉를 펴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군에 대한 적대감을 그린 〈첫 전투〉와 〈고향길〉을 펴냈다. 이 시기에는 초기와는 달리 정치·사회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선전·선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이념적 변화를 형상화한 〈해방전후〉나 북한의 토지개혁 과정을 그려낸 〈농토〉 등이 그러한 작품이다. 소설집으로 〈달밤〉(1934)·〈구원의 여상〉(1937)·〈화관〉(1938)·〈이태준 단편집〉(1941)·〈돌다리〉(1943) 등과, 수필집으로 〈무서록 無序錄〉 등이 있다. 그밖에 한 시대의 뛰어난 저서로 평가받은 〈문장론〉· 〈문장강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