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지 그르든지 또는 크든지 작든지 간에 한번 젊은 가슴을 애틋이 끓게 한 사실은 좀처럼 스러지지 않는다.
나는 그 눈을 몹시 쏘던 보석반지와 그 반지의 주인공인 혜경이를 내 기억이 있는 동안에는 잊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지금 몸을 붙여 있는 이 최목사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온 지 벌써 삼 삭이나 되었다.
철없는 어린 것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리 괴로울 것이 없으나 남의 지배 하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젊은 나로서는 여간한 고통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있는 바요 또 어떠한 고통이든지 견디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잘 깨달은 나는 모든 감정을 꿀꺽꿀꺽 참고 최목사의 명령대로 하여 왔다.
최목사는 금년 서른 한 살 되는 사람이다. 그는 일찍 자기의 아우가 어떤 여학생과 연애를 했다가 하느님의 뜻에 어그러지는 의사간(意思姦)이라 하여 쫓아버린 일까지 있는 이다. 그는 교회에서라도 젊은 남녀가 마주 서서 소곤거리는 것만 보면 곧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책망을 내린다.
최서해(崔曙海: 1901-1932)
함북 성진 출생. 본명은 학송(鶴松). 성진 보통 학교 5학년 중퇴. 그 후 막노동과 날품팔이 등 하층민의 생활을 몸소 겪음. 1924년 <조선문단>에 <고국(故國)>의 추천으로 등단. <카프> 맹원으로 활동. <중외일보>, <매일신보> 기자 역임. 그는 초기 작품에서 빈궁한 하층민의 삶을 그려내는 계급적인 작가로 활동하였으나, 그 후 시대 의식과 역사 의식을 실감 있게 다루면서 현실성과 낭만성을 다양하게 수용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는 <토혈>,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 <탈출기>,<금붕어>, <그믐밤>, <홍염>, <수난>, <무명초>, <호외 시대>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