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으련 하다가 채 못 깊고 새는 게 첫여름의 가냘픈 새벽이다.
밤은 대전역(大田驛) 그 근처서부터 벌써 동이 트더니, 호남선으로 선로가 갈려들어, 촌 정거장을 세넷 지나 K역을 거진 바라볼 무렵에는 연변의 농가에서 마침 연기가 겨루듯 솟아오르고, 두어 장 구름이 잠자던 동녘 수평선 위로 불그레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차는 유축 없이 그대로 세차게 달리고……
경희는 차창 앞으로 바투 다가앉아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에 한동안 무심하다.
끝없이 퍼져나간 넓은 들이 창밖에서 커다랗게 회전을 한다. 들바닥에는 오늘도 날은 좋으려는지 엷은 안개가 조용히 잦아졌다.
잘 갈아서 잘 태운 마른갈이 논이 자꾸자꾸 잇대어 있는 사이사이로, 바다 가운데 작은 섬 같은 못자리판이 물을 그득 싣고, 모는 이쁘게 푸르다.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새길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카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희곡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등에서 엿보이는 초기의 작품 경향은 카프의 경향파 문학과 심정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어 동반자 작가로 분류된다. 1934년 발표한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은 지식인 실직자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회화 기법은 채만식의 작품에서 자주 관찰되는 특징으로, 채만식은 이 작품을 계기로 사회 고발적 동반자 문학에서 냉소적 풍자 문학으로 작풍을 전환했다.
1936년부터는 기자직을 버리고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는데, 농촌의 현실을 그린 《보리방아》가 검열로 인해 연재 중단되는 일을 겪었다. 이후 대표작인 중편 《태평천하》(1938)와 장편 《탁류》(1938)를 발표했다. 역설적인 풍자 기법이 돋보이는 〈태평천하〉와 1930년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바라보는 냉소적 시선에 통속성이 가미된 《탁류》 이후, 《매일신보》에 연재한 《금의 정열》(1939)는 완전한 통속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발표한 《아름다운 새벽》(1942), 《여인전기》(1945)는 친일 소설이다.그 이후 친일 행적을 반성하는 의미로《민족의 죄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