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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의 사 (한국문학전집 357)

지금부터 일천 사백년쯤 전 신라나라 법흥왕(法興王)때 팔월 가윗 때. 서울 문천(汶川) 건너 서형산 밑 이손(伊飡) 벼슬 가진 당 대 명장이요, 대정치가인 이마로(伊宗—界期夫)의 집 드높은 대문 앞에는 벙치 쓰고 정등걸이 입은 구종 사오인이 쭈그 리고 앉아서 더러는 고누를 두고 더러는 이야기를 하고 있 다. 안에서는 떡 치는 소리, 부침개질하는 기름 냄새가 나온 다. 주인 대감은 오늘 신궁(神宮) 앞 넓은 마당에서 선비와 활량들이 재주 겨루는 데 시관으로 나가서 집은 조용하다. 외양에 매인 말들이 이따금 볼을 턴다. 그중에 늙수구레한 키다리 구종이, "오늘 장원이야 말할 것 없이 거칠마로(荒宗郞) 서방님이시 어." 하고 마주 앉은 잔망스러운 구종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본 다.
지금부터 일천 사백년쯤 전 신라나라 법흥왕(法興王)때 팔월 가윗 때.

서울 문천(汶川) 건너 서형산 밑 이손(伊飡) 벼슬 가진 당 대 명장이요, 대정치가인 이마로(伊宗—界期夫)의 집 드높은 대문 앞에는 벙치 쓰고 정등걸이 입은 구종 사오인이 쭈그 리고 앉아서 더러는 고누를 두고 더러는 이야기를 하고 있 다. 안에서는 떡 치는 소리, 부침개질하는 기름 냄새가 나온 다. 주인 대감은 오늘 신궁(神宮) 앞 넓은 마당에서 선비와 활량들이 재주 겨루는 데 시관으로 나가서 집은 조용하다.

외양에 매인 말들이 이따금 볼을 턴다.

그중에 늙수구레한 키다리 구종이,

"오늘 장원이야 말할 것 없이 거칠마로(荒宗郞) 서방님이시 어."

하고 마주 앉은 잔망스러운 구종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본 다.
이광수(李光洙, 일본식 이름: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 ~ 1950년 10월 25일)는 조선,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작가, 시인, 문학평론가, 페미니즘 운동가, 언론인이었으며, 조선왕가의 방계혈족,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와 독립신문 등을 맡기도 했었다. 유교적 봉건 도덕, 윤리관을 비판하였고, 여성 해방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했다. 언론 활동으로는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번역가로도 활동하여 영미권의 작품을 한글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일본 유학 중에 소설과 시, 논설 등을 발표하였고,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망명, 1919년 도쿄(東京)의 조선인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주도했으며,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후 3·1 운동 전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독립신문을 발행했다. 1921년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언론에 칼럼과 장·단편 소설, 시 등을 발표하였다.

안창호, 윤치호, 김성수 등의 감화를 받아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제창하였으며, 1922년 흥사단의 전위조직인 수양동맹회를 조직하고, 안창호를 도와 흥사단 국내 조직과 수양동우회에 적극 참여하였다.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하여, 친일파로 변절한 이후에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규탄받았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민족성, 인간성의 개조를 주장하였고 한때 나치즘 등에도 공감하기도 했다. 그는 안창호, 윤치호의 사상적 계승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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