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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 (도딤문고 03)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 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 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 조선 초기 권람(權擥)의 〈응제시주 應製詩註〉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용이 풍부하여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기〉의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랜 옛날에 환인의 서자(庶子: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가리킴)인 환웅이 항상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보내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 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 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 조선 초기 권람(權擥)의 〈응제시주 應製詩註〉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용이 풍부하여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기〉의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랜 옛날에 환인의 서자(庶子: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가리킴)인 환웅이 항상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보내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한번은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3·7일(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 3황 5제 중의 堯를 말함. 당시 고려의 제3대 왕인 정조의 이름이 요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뜻이 같은 高자를 대신 쓴 것임) 즉위 50년 뒤인 경인년(庚寅年:당고의 즉위년은 무진년으로 50년뒤면 정사년이므로 경인년이란 표현은 아마 틀린 듯함)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弓忽山:弓자 대신 方자를 쓰기도 함)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했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의 호왕(虎王:주의 무왕을 말함. 고려 2대 혜종의 이름이 武이기 때문에 이를 피한 것임)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그밖의 다른 기록들도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단군 신화」는 여러 문헌에 실려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각 문헌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삼국유사』보다 10여 년 뒤에 나온 이승휴의 『제왕운기 (帝王韻紀)』중의 단군 기록은 『삼국유사』와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① 『삼국유사』에서는 壇君'이라 했는데, 『제왕운기』에서는 '檀군이라 하였다.

②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했으나, 『제왕운기』에서는 단웅(檀雄)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인신(人身)을 이루게 한 뒤 단수신(壇樹神)과 결혼시켜 단군을 낳았다고 하였다.

③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강역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제왕운기』에는 신라, 고구려,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맥 등을 그 치하에 두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여야겠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기 (檀紀)는 도대체 어떻게 산출된 것인가? 『삼국유사』에는 단군 개국이 중국의 요(堯) 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庚寅年)에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연 자신이 주석을 달아놓은 바와 같이, 요 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戊辰年)이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丁巳年)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 권람의 『응제시주』,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무진년(戊辰年)으로 되어 있다. 모두 단군이 요 임금과 같은 해에 즉위하였으며, 그해는 '무진년'이라는 것이다. 이 요 임금 즉위 연도인 '무진년'을 연대로 환산해 보면 B.C. 2333년이 된다. 오늘날 단기(檀紀), 즉 '단군 기원(檀君紀元) 몇 년'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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