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 張志淵 )이 역술한 전기소설. 원작명은 미상이다. 1907년 광학서포(廣學書 孃 )에서 발간하였다. 표지에 ‘ 신소설 ’ 이라고 규정한 이 작품은 전10회로 되어 있으며, 잔다르크의 구국전사(救國戰史)를 중심으로 하여 그 생애를 전기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번안은 중국문헌을 매개로 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그런 보기를 인명표기에서 볼 수 있다. 곧, ‘ 카알 7세 ’ 를 ‘ 사이 뎨 칠 ’ 로 번역한 것 같은 예가 바로 그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프랑스의 애국소녀 잔다르크가 백년전쟁 때에 16세의 나이로 영국군의 포위를 뚫고 앞장서서 오를레앙성(城)을 탈환하고, 뒤에 영국군에 잡히어 화형(火刑)을 당한 사적을 전기소설로 엮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서구의 위인이며, 특히 구국의 영웅이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이는 역술가의 민족주의적 자보사상(自保思想)과 관련되는 것으로, 역사에 우의(寓意)하여 저항정신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된다. 장지연의 유일한 역술소설인 이 작품의 표지에 붙은 ‘ 신소설 ’ 이라는 용어는 독자를 혼란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1907년 〈 이태리건국삼걸전 伊太利建國三傑傳 〉 을 번역, 간행한 광학서포에서 같은 해에 〈 혈의 누 〉 와 이 소설을 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보수주의와 구국의 영웅숭배사상이 개화주의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된다.
1864(고종 1)∼1921. 조선 말기의 언론인·애국계몽운동가. 본관은 인동 ( 仁同 ), 초명은 지윤(志尹). 자는 화명(和明)·순소(舜韶), 호는 위암(韋庵)·숭양산인(嵩陽山人). 경상북도 상주 출신. 용상(龍相)의 아들이며. 장석봉(張錫鳳)의 문인이다.
1894년(고종 31) 진사가 되었다. 1895년 8월 일제의 민비시해 만행이 자행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지어 각처에 발송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 ( 俄館播遷 )이 일어나자 고종의 환궁을 요청하는 만인소 ( 萬人疏 )를 기초하였다.
한편, 사례소(史禮所) 직원으로 ≪대한예전 大韓禮典≫ 편찬에 참여하고, 이듬 해 내부주사(內部主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같은 해 7월 독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898년 9월 ≪황성신문 皇城新聞≫이 창간되자 기자로 활약하였다. 같은 해 11월 만민공동회 ( 萬民共同會 )의 간부로 맹활약하다가 그 해 말 독립협회·만민공동회가 해산당할 때 체포, 투옥되었다.
1899년 ≪시사총보 時事叢報≫의 주필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출판사인 광문사(光文社)를 설립해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 牧民心書≫와 ≪흠흠신서 欽欽新書≫ 등을 간행하였다. 1901년 황성신문사의 사장에 취임해 민중 계몽과 자립정신 고취에 진력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자에 〈시일야 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제목으로 국권침탈의 조약을 폭로하고, 일제의 침략과 을사5적을 규탄하면서, 국민의 총궐기를 호소하는 논설을 써서 일제 헌병대의 사전검열을 거치지 않고 전국에 배포하였다. 이 일로 체포, 투옥되어 65일 후 석방되었으며, ≪황성신문≫도 압수 및 정간 처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