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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흰 구두를 지어야겠는데…….” 며칠 전에 K양이 자기의 숭배자들 가운데 싸여 앉아서 혼잣말 같이 이렇게 말할 때에 수철이는 그 수수께끼를 알아챘다. 그리고 변소에 가는 체하고 나와서 몰래 K양의 해져가는 누런 구두를 들고 겨냥을 해두었다. 그런 뒤에 손을 빨리 쓰느라고 자기는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한다고 하고 그 집을 나 서서, 그길로 바로(이 도회에서도 제일류로 꼽는) S양화점에 가서 여자의 흰 구두 한 켤레를 맞추었다. 그리하여 오늘이 그 구두를 찾을 기한 날이었다. 조반을 먹은 뒤에 주인집을 나서서(이발소에 들러서 면도나 할까 하였으나)시간이 바빠서 달음박질하다시피 구둣방까지 갔다. 구두는 벌써 되어 있었다. 끝이 뾰족하고 뒤가 드높으며 그 구두..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흰 구두를 지어야겠는데…….”

며칠 전에 K양이 자기의 숭배자들 가운데 싸여 앉아서 혼잣말 같이 이렇게 말할 때에 수철이는 그 수수께끼를 알아챘다. 그리고 변소에 가는 체하고 나와서 몰래 K양의 해져가는 누런 구두를 들고 겨냥을 해두었다. 그런 뒤에 손을 빨리 쓰느라고 자기는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한다고 하고 그 집을 나 서서, 그길로 바로(이 도회에서도 제일류로 꼽는) S양화점에 가서 여자의 흰 구두 한 켤레를 맞추었다.

그리하여 오늘이 그 구두를 찾을 기한 날이었다.

조반을 먹은 뒤에 주인집을 나서서(이발소에 들러서 면도나 할까 하였으나)시간이 바빠서 달음박질하다시피 구둣방까지 갔다.

구두는 벌써 되어 있었다. 끝이 뾰족하고 뒤가 드높으며 그 구두 허리의 곡선이라든지 뒤축의 높이라든지 어디 내놓아도 흠잡힐 점이 없이 잘 되었 다. 도로라 하는 것이 불완전한 이 도회에는 아깝도록 사치한 구두였다.

“이쁘게 됐습지요.”

“그만하면 쓰겠소.”

수철이는 새심으로 만족해 구두를 받아가지고 그 집을 나섰다.
김동인 ( 金東仁 1900 ~1951)

본관 전주. 호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 창씨명(創氏名)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도쿄[東京]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발간하는 한편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 ·구금되어 4개월 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狂炎)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이광수(李光洙)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하던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1년 서울 행촌동(杏村洞)으로 이사하여 《결혼식》(1931) 《발가락이 닮았다》(1932) 《광화사(狂畵師)》(1935) 등을 썼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雲峴宮)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장(學藝部長)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붉은 산》 《태형》《김연실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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