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단편소설이다.
촉각이 이런 정경을 도해(圖解)한다.
유구한 세월에서 눈뜨니 보자, 나는 교외 정건(淨乾)한 한 방에 누워 자급자족하고 있다. 눈을 둘러 방을 살피면 방은 추억처럼 착석한다. 또 창이 어둑어둑하다.
불원간 나는 굳이 지킬 한 개 슈트케이스를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계속하여 그 슈트케이스 곁에 화초처럼 놓여 있는 한 젊은 여인도 발견한다.
나는 실없이 의아하기도 해서 좀 쳐다보면 각시가 방긋이 웃는 것이 아니냐. 하하, 이것은 기억에 있다. 내가 열심으로 연구한다. 누가 저 새악시를 사랑하던가! 연구중에는,
"저게 새벽일까? 그럼 저묾일까?"
부러 이런 소리를 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하더니 또 방긋이 웃고 부스스 오월 철에 맞는 치마저고리 소리를 내면서 슈트케이스를 열고 그 속에서 서슬이 퍼런 칼을 한 자루만 꺼낸다.
이런 경우에 내가 놀라는 빛을 보이거나 했다가는 뒷갈망하기가 좀 어렵다. 반사적으로 그냥 손이 목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제법 천연스럽게,
"님재는 자객입니까요?"
이상(李箱, 1910.08.20~1937.04.17)
일제강점기의 시인, 작가,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본관은 강릉 김씨(江陵 金氏)
서울 출생
이상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 문학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의식문학의 선구자인 동시에 초현실주의적 시인이다. 감각의 착란(錯亂), 객관적 우연의 모색 등 비상식적인 세계는 이상 그의 시를 난해한 것으로 성격 짓는 요인이다. 근본적으로는 현실에 대한 비극적이고 지적인 반응에 기인한다. 이상의 지적 태도는 의식의 내면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시세계에 도입하여 시상의 영토를 확장하게 하였다. 이상의 시는 전반적으로 억압된 의식과 욕구 좌절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상(代償) 세계로 탈출하려 시도하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