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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이상의 단편소설이다. 어서…… 차라리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루해서 죽겠을 만큼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돼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10여 호씩 있다. 휘청거리는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덩굴,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댑싸리 나무, 오늘도 보는 김 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쬔다. 아침이나 ..
이상의 단편소설이다.

어서…… 차라리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루해서 죽겠을 만큼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돼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10여 호씩 있다. 휘청거리는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덩굴,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댑싸리 나무, 오늘도 보는 김 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쬔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하며 견딜 수가 없는 염서 계속이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그럼 나는 최 서방네 집 사랑 툇마루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이 좋다.
1931년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 〈BOITEUX·BOITEUSE〉, 〈파편의 경치〉 등을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총독부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백천온천으로 요양을 떠났다가 기생 금홍(본명 연심)을 만나게 되어, 후에 서울로 올라와 금홍과 함께 다방 '제비'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1934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지만 난해시라는 독자들의 항의로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중단하였다. 1935년에는 다방과 카페 경영에 실패하고 연인 금홍과도 결별하였으며 1936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의 편집을 맡아 1집만 낸 뒤 그만두고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으며 《봉별기》가 '여성'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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