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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철학

이효석의 단편소설이다. 내려찌는 복더위에 거리는 풀잎같이 시들었다. 시들은 거리 가로수 그늘에는 실업한 노동자의 얼굴이 노랗게 여위어 가고 나흘 동안― 바로 나흘 동안 굶은 아이가 도적질 할 도리를 궁리하고 뒷골목에서는 분바른 부녀가 별수없이 백통전 한 닢에 그의 마지막 상품을 투매하고 결코 센티멘탈리즘에 잠겨 본 적 없던 청년이 진정으로 자살할 방법을 생각하고 자살하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 되기를 원하였다― 도무지 무덥고 시들고 괴로운 해이다. 속히 해결이 되어야지 이대로 나가다가는 나중에는 종자도 못 찾을 것이다. 이 말할 수 없이 시들고 쪼들려가는 이 거리, 이 백성들 가운데에 아직도 약간 맥이 붙어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정주사네 사랑일까? 며칠이나 갈 맥인지 모르나 이 ..
이효석의 단편소설이다.

내려찌는 복더위에 거리는 풀잎같이 시들었다. 시들은 거리 가로수 그늘에는 실업한 노동자의 얼굴이 노랗게 여위어 가고 나흘 동안― 바로 나흘 동안 굶은 아이가 도적질 할 도리를 궁리하고 뒷골목에서는 분바른 부녀가 별수없이 백통전 한 닢에 그의 마지막 상품을 투매하고 결코 센티멘탈리즘에 잠겨 본 적 없던 청년이 진정으로 자살할 방법을 생각하고 자살하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 되기를 원하였다―

도무지 무덥고 시들고 괴로운 해이다. 속히 해결이 되어야지 이대로 나가다가는 나중에는 종자도 못 찾을 것이다. 이 말할 수 없이 시들고 쪼들려가는 이 거리, 이 백성들 가운데에 아직도 약간 맥이 붙어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정주사네 사랑일까?

며칠이나 갈 맥인지 모르나 이 무더운 당장에 그곳에는 적어도 더위는 없다. 대신에 맥주 거품과 마작과 유흥이 있으니 내려찌는 복더위에 풀잎같이 시들은 이 거리, 서늘한 이 사랑에서는 오늘도 마작판이 어우러졌던 것이다. 삼 간이 넘는 장간방의 사이를 트고 아래 웃방에 두 패로 벌린 마작판을 싸고 전당포 홍전위, 정미소 심참봉, 대서소 최석사, 자하골 내시 송씨, 그 외에 정체 모를 수많은 유민들이 둘러앉아서 때묻은 마작쪽에 시들어가는 그들의 열정을 다져서 마작판을 탕탕 울린다.
저자 : 이효석
호는 가산(可山), 필명은 아세아(亞細亞).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생.
1920년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하여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체홉 등의 러시아 소설을 탐독하면서 1년 선배인 유진오와 교우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4년부터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을 펼치다가 1942년 5월 25일 사망했다. 경성제대 재학중이던 1928년 『조선지광』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등단 직후 한동안 동반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우」(1929), 「깨뜨려지는 홍등」(1930), 「노령근해」(1930), 「북국사신」(1930), 「마작철학」(1930)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은 이른바 제3기 프로문학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기교면에서의 열등성을 극복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프로문학의 전반적인 퇴조와 함께 그는 1933년 이무영‧유치진‧정지용‧이상‧김기림‧이태준 등과 순수문학을 표방한 구인회를 결성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작품세계를 추구한다. 즉 「돈(豚)」(1933)을 분수령으로 하여 그는 경향성을 버리고 자연을 배경으로 한 에로티시즘의 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돈」에서 작가는 식이의 애욕과 돼지의 그것이 동일선상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거니와, 이같은 경향의 작품에는 「분녀」(1936), 「산」(1936), 「들」(1936), 「메밀꽃 필 무렵」(1936), 「석류」(1936), 「화분」(1939) 등이 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애욕의 묘사와 더불어 이국취향, 즉 엑조티시즘도 이효석 소설의 주요 성향으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동반자적 경향, 에로티시즘, 이국취향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그 중에서도 그의 문학적 본령은 에로티시즘에 있는데, 성과 자연의 자연스런 대비와 융합이 시적인 문체와 세련된 언어, 서정적인 분위기의 형성으로 작품화되어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이효석은 한국의 1930년대 순수문학의 가장 빛나는 예술적 감동을 주는 소설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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