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올려 장례의 방향을 뚜렷하게 잡아 놓았던 것이다.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주로 하고 그의 문도들의 그것도 다소 곁들인 책이다. 공자의 언행은 '논어' 이외의 전적에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논어'는 공자의 제자 내지 재전제자(再傳弟子), 즉 공자를 받드는 전통파에서 정리를 가해서 엮어낸 것이어서 공자를 이해하는 데 가장 적절한 기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논어'는 오경(五經)의 관건이고 육예(六藝)의 본령이다." 조기(趙技)가 그의 '맹자제사(孟子題辭)'에서 한 말이다. 공자가 수립한 유학은 그 기본정신을 오경에서 도출하였고 육예를 그 수련과목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오경과 육예를 어떻게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와 연결시켜 그 의의를 부여하였는가 하는 것은 공자의 언행이 기록된 '논어'를 통해야 비로소 생생하게 터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조기의 그러한 말이 성립될 수 있다고 하겠다. 반고(班固) 그의 '한서예문지서(漢書藝文志序)'에서 "중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분의 미언(微言)은 끊어지고 칠십 제자가 죽자 그분의 가르침의 대의가 어그러지게 되었다"고 했다. 미언(微言)은 깊은 뜻을 지녀 배우는 사람들이 쉽사리는 터득하기 어려운 말을 의미하는 것이고, 대의는 테두리가 되는 주요한 취지로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이 공문의 후학들에 의해 정리된 것이므로 거기에는 공자의 미언과 대의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중국 고대의 사상가 ·유교의 개조(開祖).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謖邑:지금의 山東省 曲阜의 남동) 출생.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 공자의 ‘자(子)’는 존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