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월부터 9월까지 <조광(朝光)>에 연재된 중편소설. 처음 발표할 당시의 제목은 <천하 태평 춘>이었으나,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태평 천하>로 바뀌었다. 일제 시대의 지주이자 고리 대금 업자인 윤 직원 영감의 몰역사(沒歷史) 의식과 그 집안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특히 판소리 사설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문체가 독서의 재미를 더해 준다.
<태평 천하>에서 작가는 부정적 인물들로 구성된 가족을 통하여 한말(韓末)과 개화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 세대 사이의 가치관의 변화와 현실 대응에 따른 행동 유형을 보여 주고 있으며 바탕이 옳지 못한 가정이 어떻게 허물어져 가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서 식민지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생성되어야 할 것인가를 암시하려 하는 것 같다.
<태평 천하>는 윤 직원 영감과 같은 부정적이고 타락한 인물에 대한 풍자가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풍자는 반어(反語, 아이러니) 수법을 통한 부정적 인물의 희화화(戱畵化)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즉, 작가는 작중 인물을 겉으로는 추켜세우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부정적 측면을 더욱 드러내어 그 인물을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면서 추악한 일면을 폭로하고 있다.
부정적인 인물의 성격이 강할수록 풍자의 농도는 심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윤 직원 영감이 그 중요한 풍자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인물은 윤 직원 영감의 둘째 손자인 '종학'이 한 사람뿐이다. 이는 '종학'이라는 인물에 대해 작가가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종학')는 소설 전면(前面)에 등장하지 않고 윤 직원 영감의 욕망 표현 속에, 그리고 작품 후반부의 '동경에서 온 전보' 속에 잠깐 나타날 뿐이다. 물론 등장 인물의 출현 빈도수가 그 인간적 가치의 경중(輕重)에 비례하지는 않겠지만, 작가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 미래관을 구현시키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이 소설의 초점은 역시 윤 직원 영감에게 있다.
이 작품의 문체는 판소리, 또는 탈춤 사설의 어투를 계승하고 있다.
'∼입니다.'와 같은 경어체 문장이나, '∼겠다요.'와 같은 경박한 어투를 빌어서 작중 인물의 행위를 조롱하고 경멸하고 있다. 이는 바로, <춘향가>의 방자(房子)나 <봉산 탈춤>의 말뚝이 같은 인물이 양반 사대부의 면전에서는 공경스러운 태도를 짓다가도 뒤에 가서 느닷없이 조롱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다.
채만식 (蔡萬植, 1902-1950)
전북 옥구 출생,서울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수학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개벽>사의 기자를 역임했다.그는 1924년 12월호 <조선문단>에 단편 <세길로>를 추천받고 등단. 그러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0년대에 접어 들어 <조선지광>, <조광>, <신동아> 등에 단편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 1932년부터는 '카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작품 경향으로 한때 그는 동반자 작가로 불리운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동반자적 입장에서 창작하였으나 후기에는 풍자적이고 토속적인 면에서 다루어진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장편에 <탁류>(1937), <태평천하>(1937), 그리고 단편에 <레디 메이드 인생>(1934), <치숙>(1937) <논이야기> <역로>등이 있다.
장편 《탁류(濁流)》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건을 놓고 사회의 비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1973년에는 유고로 중편 《과도기(過渡期)》와 희곡 《가죽버선》이 발견되어 《문학사상(文學思想)》지에 발표되었다. 저서로 《채만식단편집》 《탁류》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집》(단편집) 등이 있고 8 ·15광복 후에는 《여자의 일생》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 《잘난 사람들》 등을 남겼다.